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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Shake it, 흔들어 봐!

박인애2016.03.14 15:10조회 수 580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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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싫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넘치는 푸념 한 마디. ‘왜 이리 덥지. 날씨 탓인가?’ 이미 익숙해져 버린 텍사스 날씨를 새삼 용의자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서울에서 온 언니가 떠난 후 생긴 후유증이거나, 우연찮게 그녀를 만난 후 생긴 자괴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흔들면 투명한 유리 볼 속에 가라앉았던 반짝이들이 움직이면서 눈이 내리는 것같이 보이는 스노우 볼snowglobe처럼, 그녀들의 활기찬 삶은 고이 잠든 나의 세계를 흔들어 놓기 충분했고 난 갑자기 눈보라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마치 더께 낀 채 긴 세월을 숨죽이며 골동품 가게에 진열된 고가구처럼 사는 나의 삶에 총채를 들고 휘두르는 가정부가 되어 삶의 먼지를 털어내려고 했고, 그 먼지는 끝내 내 삶의 근저를 뒤흔들고 만 것이다.

 

 언니는 시인이며 화가이다. 그림을 그릴 소재를 담기 위해 어디든지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자유부인이다. 대학을 다니는 조카 둘과 생선뼈까지 발라주는 자상한 형부의 외조 속에 오직 자신의 꿈을 위해서만 사는 자유스런 라이프스타일의 소유자이다. 그런 언니의 삶이 부러웠던 걸까?

 

 그녀를 만난 건 얼마 전 참석했던 컨퍼런스에서였다. 강사 소개를 하는데 그녀가 단상위에서 관중을 향해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강산이 바뀌고도 남을 만큼의 세월이 흐른 탓인지, 내가 누구라고 밝힐 때까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두 남매는 다 커서 타주 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자기는 1년에 6개월 이상을 부흥회나 강의 때문에 집을 비운다고 했다. 그녀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평범한 집사님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열심히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저마다 자기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는데 나는 여태 뭘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흔들어 놓고 간 스노우 볼은 이제 원위치로 돌아가 더 이상 눈발을 날리지 않는다. 나 역시 집안일과 딸아이의 방학에 고스란히 볼모로 잡힌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이런 일상이 갑자기 텍사스의 무더위보다도 더 답답하게 여겨진 건지도 모른다. 결국 나를 뿔나게 만든 것은 언니 탓도, 그 여자 탓도 아니다. 그저 아줌마로 전락해서 싱크 막히듯 인생이 꽉 막혀버린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세상에 가정주부만큼 힘든 직업이 또 있을까? 그건 매일 가로수 낙엽을 쓸어야 하는 청소부와 같다. 오죽하면 나무를 잘라버리고 싶겠는가 말이다. 치우고 또 치워도 계속 떨어지는 낙엽과의 전쟁 속에서 아등바등 거리는 초라한 나를 보았던 것이다.

학창시절 한 번쯤 읽어 본 헨릭 입센

 

 Henrick Ibsen의 대표작인 인형의 집1879년 나온 작품이니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희곡이다. 하지만 여주인공 노라가 집을 나온다는 얘기는 근대 시대를 거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가정주부라면 부질없지만 한번쯤 인형의 집에서 떠나 노라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가 주부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 한자는 자신은 없고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다. 매일 반복되는 주부의 일상과 애지중지 키웠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들이 결국 그녀를 뿔나게 만들었고, 마침내 주부라는 이름표를 내던지고 일 년 간의 휴가를 얻어 집을 떠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드라마니 가능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파격적인 한자의 결정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아마도 많은 주부들은 그녀의 삶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만일 나에게 그런 휴가가 주어진다면 과연 며칠이나 행복할까? 아마도 아이와 집안 일 걱정에 하루도 맘 편히 나가 있지 못할 것이다. 때 아닌 우울증을 한차례 앓고 난 나의 결론은 재충전할 수 있는 것은 휴가가 아니라 내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한자의 독백부분이다. 아무에게도 보이기 싫은 속내를 혼자말로 주절주절 토해 내는데 그 독백이 예사롭지 않다. 가만히 들어보면 그 말은 내 안에 갇혀 신음하는 소리와 너무 흡사해서 그래 맞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한자의 마지막 독백은 이러하다. “다음 생에는 나도 내 이름 석 자로 불리면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돋아난 뿔을 스스로 자르고 또 다시 인형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가 안쓰러웠으나 주부인 나는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면서 살기를 원했던 것일까?

 ‘난 말이지, 다음 생 말고 이번 생에 내 이름 석 자로 불리면서 살아보고 싶다.’ 가끔은 먼지 낀 스노우 볼을 흔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도 흔들어 줄 사람이 없다면 길건의 ‘Shake it’을 틀어놓고 스스로 흔들어도 좋지 않을까?

 

 나는 지금 부러진 연필을 깎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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