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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월의 향기

박인애2016.02.25 18:58조회 수 6685댓글 0

   오월의 향기 (2).jpg


  딸과 함께 ‘Maggiano's’라는 이태리 식당에 갔다. 이른 저녁인데도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는 오늘 스페셜이 있어서 온 거냐고 물었다. 아마도 생일이나 기념일이라고 하면 케이크라도 한 조각이라도 내오려는 모양이었다. 옆 좌석에 앉은 손님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테이블이 가깝게 붙어 있어 그런지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오늘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날이라고 말했고 같이 온 여자는 어깨를 위로 올리며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웨이터에게 머시라 귓속말을 했다. 잠시 후 웨이터가 포도주 한 병을 가져와 두 사람의 잔에 따라주며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 지금 여기 있는 남자분이 여자 분에게 공개청혼을 한답니다. 축하해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남자는 준비해 온 다이아몬드반지를 꺼내더니 바닥에 흑기사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너를 지켜 본 지난 3년은 너무 행복했어. 이젠 너랑 같이 살고 싶어. 나랑 결혼해 줄래?" 여자는 뜻밖의 청혼에 놀란 얼굴이었지만 곧 눈물 섞인 목소리로 "Yes!"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된 나는 식사도 미룬 채 감격스러운 순간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래,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 내심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저 소중한 순간을 남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한 것이다.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청혼 축하해요, 내가 사진을 찍어 주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오늘 이 순간은 생에 단 한 번 뿐이니까요. 이메일 주소를 주시면 전송해드릴게요.” 내 제안이 맘에 들었는지 두 사람은 "Thank you!"를 연발하며 바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저녁에 보내주겠노라 약속을 하고 알맞게 식어버린 식사를 시작했다.

 

   오월이 되니 여기저기서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꽁꽁 언 땅속에서 겨울을 견뎌내고 앙증맞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꽃들처럼, 키워왔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계절인가? 평생 영양가 없는 연애만 하다가 총각 딱지도 못 떼고 죽을라나 보다 걱정을 했던 남동생에게서도 결혼 소식이 왔으니 말이다.

   사십을 넘긴 나이에 온전한 장가를 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반대하고 말 것도 없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한번 만나보고 평가한다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함께 식사를 하며 받은 느낌이 편안하고 좋았다. 요즘 젊은 친구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서로의 능력을 일번으로 꼽는다던데 돈보다 사랑을 일번으로 꼽은 것을 보면서 저런 짝을 만나려고 여태 기다렸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누나 사랑으로 자란 내 동생 사정을 아는 듯, 장모님 되실 분도 소박하고 정이 많으신 분 같았다. 언니에게 동생 키우느라 애쓰셨는데 이제부터 제가 챙길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사시라 하셨다니 빈말이라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동생이 아름다운 가정을 갖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안타까워 차마 눈을 감지 못하셨던 어머니도 아마 하늘에서 기뻐하고 계실 것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지만 난 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한국의 브란 젤리나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의 애칭 로 불리는 장동건. 고소영 커플처럼 완벽하게 갖추고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외적인 완벽이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신부에게 햇볕도 안 드는 반 지하 전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하는 가난한 남편일지라도, 간이 안 맞는 된장찌개에 설익은 밥을 짓는 어설픈 아내일지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결혼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누가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부딪혀 가면서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좀 다투면 어떤가? 싸움도 애정이 있으니 하는 것 아닐까? 싸우기도 해야 모나지 않은 돌로 깎이는 것이다.

 

   사진을 업로드하고 보니 남자친구의 가슴에 기대어 수줍게 웃고 있는 여자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오월의 저녁 햇살이 두 사람을 축복하듯 황금빛 조명까지 깔아주었다. 사랑하는 연인은, 인종을 불문하고 오월이 값없이 선물한 들녘처럼 아름답다. 살다가 서로에게 화가 나고 미워질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청혼했던 날을 기억해 보면 조금은 보듬는 게 쉽지 않을까? 초심을 잃지 말고 오래 오래 행복하기를 소망하며 '보내기'를 클릭했다. 그것이 내가 사진을 찍어 준 이유이기도 하니까.

 

   가정의 달 오월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오월의 향기처럼 아름답고 행복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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