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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빨래방 이야기

박인애2016.02.16 17:53조회 수 635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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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긱-끼긱- 세탁기 도는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만 우리 집 빨래를 도맡아 해주던 세탁기가 기어이 멈추고 말았다. 사람도 십년 부려 먹으면 고장 날 판에 기계라고 뭐 용빼는 재주 있을까마는 이왕 봉사하는 길에 하던 빨래는 다 하고 가셔야지 하다 말고 가는 건 무슨 경우냐고요? 빨래는 마저 해야겠기에 비누거품을 끌어안고 뽀글거리는 빨래를 건져서 통 속에 대충 물기를 짠 후 함지박에 얼기설기 담았다. 통 안이 어찌나 깊던지 까치발을 들고 엎드려 꺼내다 거꾸로 처박힐 뻔 했다. ‘제기랄 나는 남들 자랄 때 안자라고 대체 뭘 한 겨?’


   세탁기 덕에 호강을 하고 살던 내 손목은 빨래 조금 짰다고 바로 시큰거렸다. 버스로 통학을 하던 학창시절,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손목이 휘면서 연골이 제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와 버렸다. 중심을 잡으려고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굳세게 잡고 있다가 사단이 난 것이다. 접골원을 다니며 맞추긴 했는데, 조금만 무리하면 탈골이 되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 그래서 뭔가를 짜는 것도, 다림질을 하는 것도, ! 묵 쑤는 것도 싫다. "우리 인애 시집갈 때 딴 건 못해줘도 세탁기랑 짤순이는 꼭 해서 보내야지"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시던 어머니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신 채 세상을 등지셨다.

 

    두 블록 아래 빨래방에 가기 위해 함지박을 드는 순간, 허리가 우지끈했다. ‘흐미, 무거븐 거!’ 바지에 똥 싼 놈 폼으로 낑낑거리며 간신히 차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이왕 가는 길에 영업용 큰 세탁기에 이불도 돌려보자는 심산으로 이불까지 챙겼다.

   얼마 만에 와보는 빨래방이던가! 빨래방에 와본지가 하도 오랜 지라 사용법이 기억나지 않아 눈치를 살피다가 옆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백인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저씨는 내 빨래 양을 쓱 넘겨보시더니 Triple Load에 집어넣으면 될 것 같다며 친절하게 빨래를 통 안에 넣어주시고, 25센트짜리 동전 12개를 넣은 후 Start Button을 누르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이불을 나누어 넣고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으니 봄날의 아침 햇살이 따사로웠다.


    흙 묻은 연장이 잔뜩 실린 낡은 트럭에서 허름한 청바지로 가득 찬 빨래 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아저씨, 사탕 자판기에 매달려 사탕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조르는 멕시칸 계집아이, 구인광고 종이가 너덜거리는 벽보 앞에서 목을 빼고 뭔가를 찾는 청년, 낡은 의자에 앉아 빨래를 기다리며 수다를 떠는 노모와 아낙, 그 안에서 마주 친 사람들의 모습은 낡고 허름한 빨래만큼이나 고달프고 힘들어 보였다.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내 모습처럼…….

 

    입주자의 대부분이 흑인과 히스패닉인 낡은 아파트엔 늘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주말이면 술에 취한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침대도, 제대로 된 부엌살림도 없었을 때니 빨래는 물론 아파트 내에 있는 빨래방을 이용해야 했다. 어느 날, 빨래를 기계에 넣어두고 잠시 집에 다녀왔더니 옷들이 모두 행방불명 된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동전만 가지고 가면 빨래가 해결되는 빨래방은 참 고마운 곳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빨래방과의 조우! 빨래방에 앉아 있자니 힘겨웠던 지난날들이 떠오르면서 목구멍 뒤로 뜨거운 것이 삼켜졌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는 거 아닐까? 내가 빨래방에서 이민 생활의 바닥을 배우면서 아픈 시간들을 견뎌냈던 것처럼 말이다.

끝남을 알리는 소리에 꿈에서 깨듯 추억에서 벗어나와 젖은 생각들을 말렸다. 간간히 남은 마음속의 얼룩도 지워지길 소망하면서.


  옷을 말리려고 드라이어 앞에 서는 순간, 우리 집 드라이어는 멀쩡하니까 집에 가서 말려야겠다는 짠지 아줌마 근성이 발동해 푹 젖은 빨래들을 도로 고 왔다는 거 아닌가. 집에서 돌리면 전기세가 공짜냐고요?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을 한다더니 아이고 허리야. 빨래할 때 안 돌아가는 내 머리도 같이 돌려올 꺼--.’ 아무 말 없이 내 허리를 주물러주던 남편, 딱 한마디 하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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