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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남자의 변신도 무죄

박인애2017.04.24 17:43조회 수 2401댓글 0


요즘 남편은 카카오 톡으로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주고받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른다. 무슨 비밀이 그리 많은지 전화기에 락까지 걸어 놓았다. 동네 개울가에서 팬티만 입고 수영을 하며 놀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세월이 흘러 사십대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는데도 어릴 적 감정은 그대로 살아있는 모양이다. 외식을 하면서도, 쇼핑몰을 다니면서도, 여행을 가서도, 심지어 침대에서조차 스마트 폰을 붙잡고 사니 중독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먹기 전에 기도는 깜빡해도 동창들에게 미국음식과 풍경을 보여주려고 카카오 톡에 올릴 사진을 찍는 잡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을 하나 올려놓으면 낮에는 미국에 사는 동창들이, 밤에는 한국에 있는 동창들이 번갈아 가며 반응을 하니 띠리리리링~~” 밤낮없이 문자가 들어올 때마다 울리는 기계음 소리에 미칠 지경이다. 혼자 보기 아까운건 가끔 하나씩 보여주는데 만나 본적이 없어 그런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으니 재미가 없는데 우리 남편은 까르륵 뒤로 넘어간다. 재미있어 죽겠는 모양이다. 눈치가 보이는지 기계음은 어느새 껐드만!

동창 중에는 택시 운전사로부터 사업가, 학교선생님등 사는 모습도 다양하다. 부랄 친구가 달리 좋은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어도 흉허물이 되지 않아 좋은 것 같다. 가장 순수할 때 사귄 친구들이라 그런 지 오랜 세월의 갭은 순식간에 메워지고 매일 만나던 친구처럼 너무나 자연스럽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자기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가슴속에 지닌 어릴 적 친구들. 그 기억창고들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그들은 뒤로 넘어가기도 하고 눈물 나게 그리워하기도 한다. 시골 학교에서 애들끼리도 친구, 엄마들끼리도 친구로 그렇게 한 가족처럼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지금 출장 중이다. 아마도 여기는 라스베가스다.” 하면서 호텔이며, 불야성의 밤거리며, 음식을 찍느라 카메라 폰을 열나게 눌러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 성민인 좋겠다, 너무 부럽다.” 할 테고, 잔소리 하는 마눌도 없으니 얼마나 신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아주 카카오에 빠져 사는구먼! 계속 그러면 아주 전화기를 화악 뽀사 버릴 테니까 어지간히 하셔.” 하고 협박을 하면 , 지금 당장 뿌셔죠. 새로 나온 아이 폰 사게.” 하면서 딸내미까지 합세하여 아양을 떤다. 머시라머시라 구박을 하지만 친구들과의 소통이 남편의 건조한 삶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고 사는데 바쁘기도 했지만,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치이다 보니 어느 날부터 마음 문에 빗장을 지르고 살았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우리 식구끼리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사니 딱히 만나는 친구도, 즐기는 취미생활도 없었다. 아내 입장에서는 정확하게 칼 퇴근을 하여 집에 들어와 가족과 함께 하는 남편이 좋기도 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 늘 안쓰럽기도 했던 것이다. 요즘은 직원들과 수요일마다 테니스도 치고 족구도 한다. 밤이 되도 열기가 가시지 않는 뜨거운 날씨지만 온몸이 젖도록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다가 오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몸은 지쳐보여도 얼굴은 맑음이다. 그런 남편을 보는 나도 흐뭇하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얼굴의 60개의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난 것이다. 뜨거운 텍사스가 선물한 점과 잡티를 제거하고 왔단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었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자기 얼굴에 생긴 점들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한국에 갔다 온 지인이 나 쓰라고 선물한 얼굴 마스크 팩도 어느새 빈 통이다. 누구한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어진 걸까? 조만간 뉴욕에 사는 동창을 만나러 회동할 것이고 한국 출장 때는 동두천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겠다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태평양을 이어주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남편에게서 빠른 맥박소리가 들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얼굴에 물이 닿으면 안 된다 해서 사흘 동안 도를 닦는 심정으로 머리를 감겨주었다. 탑동초등학교 만세다.

 

그래, 다 용서해주마. 남자의 변신도 무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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