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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봄이라는 이름으로

박인애2016.10.13 15:20조회 수 1492댓글 0

 

  새 학기 수강신청을 하고 등록금 납부 버튼을 클릭했더니 낼 것이 없다고 나왔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나? 징수금액은 분명히 있는데 고지금액이 0 이라니......’ 몇 번을 누르다가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감면금액란에 성적 우수 장학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 그럼 내가 장학생?’ 성적표를 통해 ALL A를 맞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장학금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쁨보다는 어떻게 내가? 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작년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혹시 나에게 해당하는 장학금 혜택이 있을까 하고 장학규정을 읽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항목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성적 우수 장학생만 예외인지는 모르겠으나 톡톡 튀는 젊은 친구들도 많았을 텐데 나 같은 아줌마가 장학생이라니……. 한 박자 늦게 밀려온 기쁨에 너무 좋아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기뻐서 나오는 눈물은 혼자 흘려도 절대 궁상맞지 않았다.

 

  공부를 해 보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시작은 했으나 막상 해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마음처럼 머리가 따라주질 않았던 것이다. 암기는 더 더욱 힘들었고 말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가 아니라 나이는 현실이었다. 배우고 보면 결국 나도 아는 내용인데 전공 책이라 그런지 일부러 어려운 말만 골라서 써 놓은 종합세트처럼 느껴졌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국어가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영어도 아니고 늘 쓰는 내 나라 말이니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름 나도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는 교만도 작용을 했던 것 같다.

 

  문예창작과는 책을 읽고 리포트를 쓰는 과제가 많다. 학생 때야 할 거 다 하면서도 2-3일이면 책 한권을 읽어 치웠지만 아줌마는 어디 그런가! 살림하고 아이 돌보고 바깥일까지 하다 보니 자꾸 맥이 끊기는데, 한심한 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을라치면 앞의 내용이 생각이 안 나서 읽었던 곳을 수도 없이 다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감상문도 어려운데 비평적 감상문을 쓰라하고, 한술 더 떠 책 한권을 읽고 같은 내용을 미시, 통합, 거시, 정교화, 초인지 이렇게 다섯 가지 과정으로 분석을 하고 느낀 점을 쓰라하니 쥐정신으로 사는 아줌마에게는 보통 큰 고문이 아니었다.

 

지난 1년 동안 밤잠을 제대로 잔 날이 거의 없다. 집안일을 다 끝내고 식구들이 잠든 시간이 제일 조용하고 전화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인지라 아침 형 인간에서 올빼미과로 전향을 했기 때문이다. 지식이 쌓여 갈수록 체력은 바닥나기 시작했다. 면역체계가 균형을 잃었는지 어느 날부터 내 몸의 여기저기에서 신호를 보내왔는데 그걸 무시한 채 살다가 결국 병원신세를 지고 말았다. 늦게 시작했으니 빨리 끝내야한다는 생각에 너무 무리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공부도 좋지만 건강이 먼저니 건강부터 챙기라는 사람, 다 늦게 공부해서 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그것도 욕심이니 내려놓으라는 사람, 어렵게 시작했으니 포기하지 말고 과목을 줄여서라도 계속 하라는 사람, 공부 한다고 할 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 내가 아파서 눕게 되니 주위의 여론이 분분했다. 게다가 학비에 책값에 병원비까지 계속 나가니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러워서 내가 공부를 계속 하는 게 옳은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만두자니 그동안 공부한 게 억울했다. 그래서 결국 과목수를 줄여 천천히 가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수강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잘 했다고, 앞으로 더 잘하라고 장학금까지 주었으니 포기 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2008814일 동아일보의 한 칼럼에 실린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젊었을 때 열심히 살았던 이분은 63세에 정년퇴직을 한 후 남은 인생은 그저 덤이라는 생각으로 죽을 날만 기다렸다. 95세 생일날, 퇴직 후 30년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헛되이 보내진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고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105세 생일에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분은 공부를 시작 하셨을까? 가까운 곳에 사신다면 식사도 대접하고 마음의 장학금이라도 전해 드리고 싶다. 나도 후회하지 않는 열혈 50대로 살고 싶다. 봄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하니 세상이 온통 봄이다.


 20130514145448480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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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Invisible Set (by 박인애) (에세이) 교통정리 (by 박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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