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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버지의 강

박인애2016.05.02 07:51조회 수 355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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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난 8개월 동안 나는 아버지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이 아직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애써 가라앉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출판기념회의 축사를 부탁받고 읽게 된 어느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휘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그 바로 몇 주 전 방송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볼 때부터 이미 울렁거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헤어진 지 60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들의 절규는 한 평생 북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술로 사신 실향민 아버지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살아 숨을 쉬는 동안 단 한 번만이라도 그리운 부모형제를 만날 수 있기를 그토록 소망했던 아버지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셨다. 매번 신청을 했지만 아버지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삭혀지지 않은 채 가라앉았던 온갖 앙금들이 내 기억의 수면 위로 갑자기 떠올라오면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끝내 앓아눕게 되었다.


  한 때 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안계시다고 말하고 다녔었다. 자식에게 무관심한 아버지, 차라리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에게는 전처 자식들에게 내어줄 마음의 자리가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우리들은 지우고 싶은 혹 덩어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1년에 한두 번 명절 때 의무적으로 보는 것으로 부모자식간의 도리는 한 거라며 위로하고 산 세월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눈길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빚진 것이 없으니 갚을 것도 없다는 생각!” 소설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런 마음을 가졌듯, 나이 어린 마누라에게 잡혀 사느라 시집가는 딸들에게 일원 한 푼도 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갖고 산 것이 사실이다.

자식을 돌보지 않은 세월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다 자라지 못한 마음에 한이 되어 마음속에 독초를 기르게 한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도, 새엄마가 돈 걱정을 하며 죽는 소리를 할 때도 못들은 척 해버렸었다.


  나이가 들고 자식을 기르다 보니 핏줄이 뭔지 버리고 싶도록 미웠던 아버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살고자 작정한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타인에 의해 인생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수 있더라는 것을 실패를 통해 깨달았을 무렵, 나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인생을 조금씩 이해해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식을 버리고 마음이 편했으랴! 아버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바꾸면서 아버지와 연락을 하며 살게 되었고, 미안함으로 범벅이 된 아버지의 편지와 회환의 눈물 앞에서 미움과 원망의 세월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날 새벽을 가르고 울리던 전화벨 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자의 직감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잘 맞을 때가 있다. 특히 나쁜 일일수록 그렇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코마상태인데 위독하시다는 연락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일찍 아버지를 용서했더라면 미국에 모셔서 사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그렇게 보고싶어 하던 손녀와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을 텐데, 매번 다음으로 미루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당당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없고 뼈에 가죽만 바른 초라한 노인네가 온몸에 줄을 주렁주렁 달고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간신히 숨을 내쉬고 계셨다.

죽음 앞에서 용서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귀에 대고 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이제는 나한테 미안해하지도 말고, 아버지를 양로원에 버린 새 엄마를 원망하지도 말고 다 내려놓으시라고, 다음 생에선 꼭 내 아버지로 살아달라고, 나도 아버지가 너무나 필요했고 그리웠다고, 그리고 이젠 용서할 수 있다고

  아버지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무언의 대답을 보여주시려고 숨 줄을 놓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셨는지도 모르겠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모여드는 미국의 명절 추수감사절기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임진강에 뿌려 달라고 편지에 유언을 하셨다.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운 부모님 영전에 엎드려 목 놓아 울고 싶다고 하셨던 내 아버지, 지금쯤은 그 소원을 이루셨을까?


  깊고도 슬펐던 아버지의 강. 그 강은 이제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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