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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초경

박인애2017.09.10 18:40조회 수 457댓글 0

 캡처.PNG


 여자아이가 성숙기에 이르러 처음 하게 되는 월경을 초경이라 한다. 발육상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13-14세 정도, 그러니까 중학교 때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영양상태가 좋아서인지, 체질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초경이 우리 자랄 때보다 빠른 것 같다. 딸아이 또래 중 많은 아이들이 이미 10살 이전에 초경을 경험했다 하니 말이다. 덩치만 컸지 초등학생인데 어른들도 귀찮고 싫은 달거리를 매달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울까? 그것도 이 더운 택사스에서 말이다.

 마냥 어린아이로 여겨지던 딸이 초경을 시작하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고마운 게 엄마의 마음인 것 같다. 모성을 가진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롭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신 게 벌이라고만 생각하기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거기엔 기쁨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나의 초경은 온 동네가 들썩거리도록 유별나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가을, 그날은 하늘이 열렸다는 103일 개천절이었다. 전날 밤부터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기분 나쁘고 요상한 통증이었다. 잠든 엄마를 깨워 배가 아프다 하니 약통에서 소화제를 꺼내 주셨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니 아무래도 오지게 체한 것 같다며 바늘통을 들고 오셨다. 엄마의 손 따는 과정은 다음 같다. 등뼈를 따라 암팡지게 손바닥으로 등을 친다, 어깨부터 손끝방향으로 손바닥을 이용해 피를 몬다, 엄지손가락을 실로 감는다, 바늘 끝에 머릿기름을 바른다, 엄지손가락을 기억자로 꺾는다, 피가 나올 때까지 찔러 나쁜 피를 꾹꾹 짠다. 여군 출신답게 절도 있고, 침쟁이 마누라답게 노련한 솜씨로 말이다.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다리도 펴지 못하고 방바닥에 구르는 지경에 이르자 혹시 맹장인지도 모르겠다며 아침을 기다려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의사선생님은 내 배를 이리저리 눌러 보시더니 맹장은 아니라했다. 변은 잘 보았는지, 혹시 생리를 할 때가 된 건 아닌지 묻자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얘는 아직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간혹 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배가 딱딱해지고 가스가 찰 수 있으니 관장을 해서 속을 비워보자 하셨다. 그러다 속옷에 묻은 검붉은 것을 발견하고서야 모든 의문은 풀리게 되었다. 초경이었다.

 의사선생님은 따님이 어른이 되었으니 케이크라도 사 주셔야겠어요.”하셨다. 집에 오는 차안에서 엄마는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하며 자꾸만 웃으셨다. 그 덕에 케이크를 얻어먹은 것 까진 좋았는데 엄마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 지 동네방네 소문을 퍼트리셨다. 내 눈 흘김 따위는 무시한 채 말이다.

 

 201331, 화장실을 간 딸내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큰일 났어. 나도 피가 나와.”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모녀는 국경일하고 무슨 동맹을 맺은 것도 아닌데 나는 개천절에, 딸내미는 삼일절에 초경이 시작되었다. 지난주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선생님께 콧잔등에 자꾸 뭐가 나고 신경질이 늘었다 하니 초경을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딸내미에게 여러 가지를 일러주셨다. 사전교육 덕분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한 것 같다.

미국은 5학년이 되면 부모의 동의하에 'PUBERTY사춘기라는 동영상을 보여준다. 원하면 부모님도 볼 수 있다. 동영상을 통해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 즉, 사춘기 때 몸의 변화와 초경, 성교육에 관한 상식 등을 배우게 된다. 그것을 보고 나면 이유 없이 신경질이 나는 이유가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기복이 심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생리를 하면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쉬쉬하며 감추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보고 들은 것도 많고, 오픈된 세상에 살고 있으니 나 같이 미련한 해프닝을 겪는 아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흘 내 딸내미 이불 빨래를 했다. 요즘처럼 편한 세상에 이불 빨래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대충 더러운 곳만 찬물에 문질러 세탁기에 집어넣으면 기계가 알아서 세탁하고 말리기까지 해 주는 것을.

칠칠치 못한 딸년 때문에 이불 빨래 원 없이 하신 우리 엄마, 피는 더운물로 빨면 응고되어 안 지워 진다면서 부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늘 초벌 빨래는 찬물에 하셨다. 빨래 줄에 널면 이내 이불 호청이 꽁꽁 얼어 버리던 그 추운 겨울에도 말이다. 침대커버를 갈다가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졌다. 다 늦게 딸을 키우다 보니 이제 사 철이 드나보다.

 엄마랑 하나도 안 닮았다고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며 많이도 놀려 먹었는데, 생각해 보니 난 울 엄마 딸이 확실한 것 같다. 한술 더 떠서 이렇게 신문에 대 놓고 수다를 떨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따라 엄마가 너무 그립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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