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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꽃 예찬

박인애2017.08.20 21:03조회 수 42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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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도 안하고 앞뜰로 달려 나가는 게 내 오전 일과 중 하나이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정수리가 따끈해 질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분꽃 씨를 받고 누런 떡잎들을 솎아 주면서, 활짝 핀 꽃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좋기 때문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분꽃이 많이 피어서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산책을 하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해 준다.

 

 2009년 이른 봄, 분꽃이란 아이디를 가진 광자언니가 너도 한 번 길러 보라며 분꽃 씨를 건네주었다. 망설이는 내게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며 나무젓가락을 땅에 꽂아 휘휘 돌려 구멍을 낸 후, 분꽃 씨를 넣고 흙만 덮어주면 된다고 했다. 응달이든 양달이든 상관이 없고, 한 번만 심어놓으면 공들이지 않아도 매년 저 혼자 피고 진다하니 세상에 이런 기특한 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햇살이 따사롭던 사월의 어느 날, 딸아이와 함께 꽃씨를 심었다. 그날부터 분꽃은 우리 집 앞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떡잎이 올라 왔을 때의 기쁨을 어찌 이루 말하랴! 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 우리 남편이 잡초인줄 알고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땅을 뚫고 나온 보람도 없이 죽어 버렸다. 다행히 나중에 올라온 싹들이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한 후 공기를 정화 시켜준다는 아이비며 행운목, 산세베리아 같은 식물들을 집안에 들여 놓곤 했었다. 웬만하면 잘 자란다는 것들도 우리 집에만 오면 얼마 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지라, 그저 몇 주 초록색이 집안에 있어 보기에 좋았더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심어만 놓으면 너희 식구 먹을 만큼은 나올 거라며 시 아버님이 보내주신 고추 모종도 얼마 안가 죽어 버렸다. 그래서 영란이가 보내준 사진 속에 직접 가꾸었다는 멋진 꽃밭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대체 그 집 땅은 무엇이 다르기에 깎은 감자 껍질을 거름이 되라고 묻기만 해도 알토란같은 감자가 주렁주렁 열린단 말인가? 화분에 심은 방울토마토 덕분에 토마토 살 일은 없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샘이 날 지경이었다. 재주가 없는 건지, 우리 집 터가 나쁜 건지는 몰라도 화초 키우기를 포기했던 내게 분꽃은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왔다.

해를 더해 갈수록 줄기가 굵어지고 키도 자라서 올해는 화단이 분꽃으로 꽉 차 보인다. 올봄엔 빈 공간에 외롭지 말라고 한 구멍에 분꽃 씨를 2알씩 심었더니 진분홍색과 노란색 꽃만 핀 것이 아니라 반반씩 섞인 녀석들이 피어나 우리를 놀라게 했다. 너무 예뻐서 사진기를 매일 들이 대다보니 올 여름은 우리 딸내미 사진보다 분꽃 사진이 더 많다.

 “언니가 품종 개량까지 한다.”며 칭찬을 실어준 영란이에게 내손으로 심고 수확한 꽃씨를 보내주었다. 내가 누린 행복을 꽃을 사랑하는 그 친구에게도 나눠 주고 싶었다. 내년 이맘 때 쯤엔 그녀의 꽃밭 사진에서 예쁜 모습으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게 꽃씨를 주었던 광자언니의 마음도 그랬을까?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항상 기쁘다.

 

 씨를 받는데도 법칙이 있다. 연두색이거나, 연두와 검정이 섞여 얼룩덜룩한 것은 아직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니 따면 안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한 이틀 기다려 주면 표면이 아보카도처럼 단단해지고 쪼글쪼글해지면서 검은 색으로 변한다. 마침내 종자를 번식 할 수 있는 성숙한 씨앗이 된 것이다. 스스로 단단해지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것은 얼마나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것인가! 그건 사람이나 식물에게 똑 같이 적용 되는 원리일 것이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남과 비교를 하면서 닦달을 하면 급한 마음에 따버린 연두색 씨앗처럼 이내 죽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꽃잎이 진 자리엔 어김없이 씨가 맺힌다. 참고 기다려주면 제 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씨는 꼭 말려서 보관해야 한다는 것도 바로 딴 꽃씨를 지퍼 백 속에 넣었다가 곰팡이가 피어서 버리고 난 후에야 깨달은 지혜이다.

 

 씨 안에 하얀 분이 들어 있어 분꽃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이름이 참으로 정스럽다. 분꽃의 영어 이름은 ‘Four-O'clock’이다. 오후 4시에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텍사스는 더워서 오후 6시가 지나야 꽃이 활짝 피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피었다가 해가 솟아오르면 꽃잎을 닫아 버린다.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피어나는 강인한 분꽃처럼,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우리 이민자들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서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길 추수의 계절 가을에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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