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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슴으로 낳은 아이

박인애2017.07.04 20:27조회 수 80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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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언니를 다시 만난 건 불광동에서 가까운 한 재래시장에서였다

 달궈진 아스팔트가 학학 열기를 토해 내던 늦여름 오후. 동네 아주머니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된 시장입구 닭 집에 튀김 닭을 사러 갔던 바로 그날, 그곳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가 가게 옆에 세워두었던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풀며 어머니, 애들 저녁만 해주고 나올게요.” 하자 그럴 필요 없다며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셨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던 긴 생머리도 여전했고 한여름에도 손등까지 덮는 긴 망사 스웨터를 입는 것도 여전했다. “.........! ”

 

 사람을 잘못보신 거라고 정색을 하며 자전거 방향을 틀던 언니의 화상으로 흉 진 오른 손을 잡으며 언니 맞잖아, 나 이 상처 기억해요.” 하자 눈가가 붉어지며 눈물이 고였다. “재혼 하셨다죠?” “.” “오빠랑 작년에 언니 친정에 갔었어요. 오빠가 일본에서 돌아왔거든요.” “이제 다 끝났어요. 그런 무책임한 사람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아가씨, 제발 부탁인데 저를 보았다는 말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주세요. 내 자식 버린 죄로 남의 자식 기르며 죄 값 충분히 치르며 살고 있어요.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 어머님 가게에서 저를 만나더라도 아는 체 말아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탁이 아니라 어겨서는 안 될 명령처럼 들렸다. 그날 난 라는 대답밖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은 혼처가 생겨 연재는 재혼을 시켰고 두 애들은 입양기관에 맡겼는데 마침 두 형제를 원하는 부부가 있어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들었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던 처형의 말에 오빠는 주저앉고 말았다. 충청도 산골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차바퀴가 진흙탕에 빠졌을 때도 우린 입에 빗장을 지른 채 장대비 속에 눈물을 맡기고 미친 듯이 차만 밀었다. 그길로 합정동에 있는 입양기관을 찾아가 보았으나 이미 생모가 친권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은 후라 아이들의 연락처는 규정상 알려줄 수가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우린 누구도 애비라는 사람이, 어미라는 사람이, 친척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라는 말로 책임을 묻고 따지고 퍼붓고 몰아세우지 않았다. 아이들을 오지로 내 몰은 우린 모두가 죄인이고 공범이므로 서로를 나무랄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부도를 막지 못한 결과로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

 

 미국에 와서 아이들을 찾아보려고 여러 군데 의뢰하여 알아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이미 양부모 만나 홍 씨가 아닌 미국 성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찾은 들 도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입양아에 대한 기사를 대할 때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말이다. 지난 주 인터넷 뉴스에서 프랑스 차기 대통령으로 주목받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참모들과 회의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한국 사회에 이슈가 되었다. 그 사진 속의 플레르 펠르랭이란 동양여자 때문이었다. 16세 때 바칼로레아 합격, 명문학교 졸업, 29세에 정치에 입문, 올랑드 후보의 핵심 참모...... 그런데 그녀를 지칭하는 화려한 수식어 보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한국이름 김종숙, 생후 6개월에 프랑스에 입양이란 글귀였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입양아라는 사실이 마음의 짐이자 성공의 밑거름이었으며 버려진 아이라는 생각이 늘 나를 힘들게 했지만, 중요한 일이(입양) 우연히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역경을 딛고 당당하게 성공한 그녀의 스토리는 감동스럽고 자랑스러웠다. 그런 스토리는 백번을 읽어도 흐뭇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아이를 가슴으로 낳아 친 자식처럼 기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고개가 숙여진다. 어와나(AWANA)에 딸 셋을 데리고 오는 한 백인부부는 올해 우간다에 단기 선교를 갔다가 두 자매를 입양해 왔다. 발바닥과 치아만 하얀 애기를 안고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실천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연재 언니와 내 사촌 조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값없이 받은 사랑, 나누며 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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