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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무지개를 꿈꾸며

박인애2019.06.18 01:54조회 수 369댓글 0

 무지개1.jpg

 

 유명 작가의 생가를 방문할 때면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나러 가는 날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좋아하는 작가일수록 그러하다. 어떤 곳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집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작품을 썼는지 등을 알아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직접 보고 안내하는 분의 설명을 들으면 작가나 작품 속 인물과 한걸음 가까워진 느낌을 받게 된다.

국적, 기후,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작가가 걷던 동네의 작은 오솔길, 부엌, 침실, 볕이 잘 드는 창문, 작가의 얼굴이 들어 있는 액자, 입던 옷, 책상, 깃털이 달린 펜대, 빛바랜 종이에 적힌 친필 등 작가의 흔적이 남은 공간이나 물건을 접하다 보면 공감과 연민이 생기고 작가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작가마다 느낌이 다른데 그 중 에드가 알렌 포우의 생가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슬픔과 뭉클함은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작가의 생가는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곳에 있다.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태어난 집, 학창시절을 보낸 집, 결혼생활을 했던 집, 여생을 마무리한 집이 각각 다르다. 같은 작가의 생가를 다녀왔는데 장소가 달랐다면 그런 경우일 확률이 높다. 유명문인의 집은 잠깐 살았던 곳도 생가로 지정해 보존한다. 불후의 명작을 남긴 문인은 받는 대접도 다른 것 같다. 내가 가보고 싶은 생가는 작가가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시절 살던 곳이다. 그곳은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 상상했던 언덕을 직접 가보았을 때의 감동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여름이어서 폭풍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곳에 서니 숨 막히도록 가슴이 벅차올랐다. 민들레와 히스,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그림 같은 광경을 보며 작품 속 풍경을 그려 보았다. 그 마을을 지나며 본 재밌는 것은 집 앞에 놓인 쓰레기통 뚜껑 위에 올려진 넓은 돌이었다. 황량한 언덕에 부는 폭풍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브론테의 생가에서 세 자매가 썼던 방과 거실 부엌을 돌아보며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각자의 방에서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웠겠다고 생각하니 모든 공간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들이 함께 걸었을 골목과 언덕,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까지 걸으며 그들의 작품을 생각해 보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생가 중 그레스미어Grasmere의 도브코티지Dove Cottage를 방문했다. 원래 Dove & Olive라는 선술집 겸 여관이었는데, 1799년 워즈워드와 시인이었던 여동생 도로시가 이사와 1808년까지 살았다. 워즈워드가 동생 친구인 메리 허친슨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고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방에서 창문을 열면 꽃이 만발한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아늑한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하며 위대한 시들이 탄생했다. 뒤뜰에 놓인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꽃을 보고 있자니 그가 노래했던 무지개가 떠올랐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나 어렸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러기를 바라노니

그렇지 않다면 죽음이나 다름없으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무지개 전문, 윌리엄 워즈워드-

 

 

 궂은 날이 많은 영국 날씨는 맑다가도 갑자기 비가 오기 때문에 비옷이나 우산을 챙겨야 한다. 흐린 날이 계속되다 잠시 태양을 비춰 만들어진 무지개를 만났을 때 소년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배경을 알고 읽으면 무지개는 더 귀하게 와 닿는다. 시인은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훗날 온 세상이 알아주는 시인이 될 거라는 것을.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독자가 읽어주고, 후세에 남겨져 존경받는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돋보기를 쓰고 지도를 들여다봐도 찾기 어려운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살던 한 작가의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수만의 관광객이 세계각지에서 몰려드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문학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오늘 밤에도 후세에 남겨질 어느 작가의 작은 골방엔 타이프 소리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찬란한 무지개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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