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박인애의 쉬어가는 의자

(에세이) 건망증

박인애2018.09.24 11:30조회 수 263댓글 0

 

v.jpg

 

 한동안 괜찮았던 그놈의 건망증이 또 시작되었다.

 집중을 해보려 애를 써 봐도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단어가 가물거린다. 특히 명사가 그렇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면 음~ 저기~ 뭐더라~ 하며 군소리를 넣게 된다.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처럼 바로바로 클릭이 안 되니 답답할 뿐이다.

좋아하던 연예인 이름도 생각이 안 나서 그 남자 있잖아. 누구더라? , 접때 막장드라마에서 나쁜 여자의 애인으로 나왔던 남자 말이야.” 대체 뭐라는 소린지? 내가 말해 놓고도 한심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남편과 딸이 알아듣고 답을 해준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나 할까. 한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어서 가능한 묘한 소통이 내심 뿌듯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 남편의 건망증도 만만치 않다. 생각을 질질 흘리고 다닌다. 그래서 내게 갱년기라 그런 거라든지, 할머니가 다 돼서 그런 거라며 이죽거리진 않는다. 그런데 실은 그보다도 하루에 한 번씩 사고를 안 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명언을 남기신 나의 조상 안중근 의사가 보셨다면 아마도 너는 順興安氏에서 密陽朴氏로 갈아탄 것을 아주 잘했다 하실 것이다.

 요즘은 이따가, 나중에가 안 된다. 생각났을 때 바로 해야지 돌아서면 지워져 나중은 없다. 집안일 실수하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타인과 얽힌 중요한 일을 그르치면 속에서 부아가 치밀고, 결국 자책과 우울로 이어진다.

 

 이모에게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아직은 기억 일부가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부터 살짝 지워졌다 돌아오는 정도다. 먼 기억은 오히려 선명한데 십 분 전 일은 기억하지 못해서 방금 밥을 먹고도 안 먹었다고 한다거나, 누구라고 설명했는데 누구냐고 되묻는 정도이다.

팔십 대 후반의 노인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왠지 믿기지 않았다. 밤새 안녕이란 말은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통화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시부모님 안부까지 챙기던 분이 내게 누구시냐고 묻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날은 예전과 다름없으시고, 어떤 날은 이름은 기억하는데 계속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열을 올리며 하신다.

 

 완전히 정신을 놓은 상태가 아니면 치매가 와도 사람은 몸이 기억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밥도 짓고, 청소도 하는데 문제는 가스 끄는 것을 잊기도 해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혼자 집에 계시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매일 운전하고 다니던 동네 길인데 집을 못 찾아 헤매고 다니신 후로 자동차 키도 드리지 않는다. 본인은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못하게 하는 것이 많아지니 화를 참지 못할 때가 있다.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자손들과 근처에 사는 사촌 언니가 음식도 해다 드리고 챙기지만 24시간 따라 다닐 형편이 못되니 안타깝다.

 

 드라마에서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정을 보면 정작 정신을 놓아버린 분은 평화인데, 남은 가족은 전쟁이 따로 없었다. 딸내미에게 엄마가 이다음에 저 할머니처럼 되면 어쩔 거냐고 물어 보았다. 자기가 집에서 끝까지 돌봐 줄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엄청 든든했다. 나이 들어 몸이 아픈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제발 정신 놓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설령 그런 날이 온대도 집에 있으면서 식구를 힘들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모의 치매가 시작되니 챙길 주제도 못 되면서 가족들이 집에 모시고 있으면 안 되나 하는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집에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타부타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요양병원으로 보내면 불효를 저지르는 것만 같은 한국인의 정서 때문인지 몰라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미국에서 사는 자녀들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섭섭해 할 일이 아닌데 말이다.

 

 새어머니와 이복동생이 친정아버지를 치매 환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한 달 동안은 적응 기간이어서 면회도 안 되고, 환자가 도망갈 수 없도록 밖으로 나가는 문이 모두 차단된 감옥 같은 곳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언니가 면회를 하였는데 아버지는 치매가 아니었다. 그곳에 갇혀 있으면 정상인도 미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포천의 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겨드렸다.

 이복동생이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들을 고하며 요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고 했을 때 그동안 고생했다며 그러라고 했다. 치매 환자를 집안에서 돌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말을 부풀려 자기편을 만들고 귀찮은 아버지를 내쫓으려는 생각인지 몰랐다. 그래도 자기 친아버지인데 어떻게 그리 모질 수가 있나 싶어 지금까지 안 보고 지낸다.

 나이가 드니 항문 조절이 안 돼서 변이 샜던 것이지 똥오줌 못 가려 쌌던 게 아니었고, 옛날엔 빗물도 받아먹고 홍수로 흙탕물이 된 시냇물도 먹고 살던 사람이어서 변기 물에 걸레를 한 번 빨았을 뿐이고, 한쪽 귀에 장애가 오기 시작하니 잘 안 들려 텔레비전을 크게 틀었던 것이지 미쳐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를 장애인으로 등록하여 자동차며 세금이며 나라에서 장애자 혜택은 다 자기들이 받아먹었으면서 귀찮아지니 내친 것이다. 꼭 그래야 했다면 정신병원이 아니라 요양병원으로 보내 드렸어야 했다. 아마도 집으로 찾아올까 봐 가둬 두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이 마음 편하다 하셨다. 말벗도 생기고, 아픈 사람들에게 침도 놔주고, 공기 좋은 곳에서 운동도 하며 사니 좋다는 말에 안심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쓰러지셨다. 걱정할까 봐 말은 그리했어도 자기 인생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하니 우울하기도 하고 분함을 견디지 못했는지 혈압으로 쓰러지셨다. 모든 게 그 모녀의 탓인 것 같아 인연을 끊어버렸다. 아버지가 떠난 후론 요양 소리만 들어도 신경에 날이 섰다. 미국에 사니 가보지도 못하고 매달 용돈 보내드린 것밖엔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원망만 하는 못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콩나물 3봉지에 파가 4봉지나 들어있었다. 건망증이 심해지면 머리에 살 게 하나 꽂히는 순간 사고 또 사고를 되풀이한다. 언젠가 폴로 브이넥 핑크색을 세 번 사 온 것에 비하면 그나마 싸게 먹힌 편이다. 이미 샀는데 어떻게 생각이 안 날 수가 있을까? 매일 먹어야 하는 약도 건너뛰고, 먹고도 안 먹은 것 같아서 콩알 주워 먹듯 또 먹는 내 머리를 당최 믿을 수가 없다. 건망증도 슬픈데 정신 줄을 아주 놓아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치매 초긴가 걱정이 되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건망증은 4~50대가 되면 누구나 겪는 흔한 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친절한 지식인들이 극복하는 방법도 올려놓았다. 긴 얘기 짧게 쓰자면 가벼운 유산소 운동, 제철 채소와 과일 섭취, 그리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머리와 손가락을 많이 쓰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하니 더 많이 읽고 타이프도 많이 쳐야겠다. 딸도 어리고 할 일도 많은데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전에도 이러다 말았으니 괜찮아지겠지?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딸자식 힘들게 하지 말자고 노후대책용 보험 상품을 쇼핑하던 남편이 피검사를 하고 왔다. 혈관이 약해서 멍이 잔뜩 퍼진 팔뚝을 보고 있자니 맘이 짠했다. 이런 날도 무거운 박스를 날라야 하는 인생이 참 고달프다. 그럴 땐 푼수처럼 너스레 떠는 게 최고다. “그럼 이제 우리 노후에 밥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지?” “그렇지

 조급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는 거다. 누군가 그랬다. 노년이 복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노년이 복되다는 게 무엇일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삶을 살다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억력에 좋은 채소와 과일을 사러 나가야겠다.

 

 

 

 

 

 

  • 0
  • 0
(시) 독도의 날 (by 박인애) (시) 다시멸치 (by 박인애)

댓글 달기 WYSIWYG 사용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정렬

검색

정렬

검색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