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박인애의 쉬어가는 의자

(에세이) 시간 여행

박인애2018.05.27 18:33조회 수 178댓글 0

20170613_204231.jpg

 

 

 

지난주에 딸과 함께 엘에이에 다녀왔다. 딸이 크면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대화도 통하고 코드도 맞아서 즐겁게 다녔다. 떠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각자 가고 싶은 리스트를 만든 덕분에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알차게 여행할 있었다. 책을 좋아해서 도서실이나 책방은 겹쳤지만, 딸이 좋아했던 라크마Lacma 내가 지루했고 내가 좋아했던 유니버셜 스튜디오 딸이 지겨워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며 참아주고 맘껏 즐기도록 기다려주었다.

 

낯선 도시에서 마음대로 다닐 있었던 우버 택시 덕분이었다. 숙소를 한인타운에 정하고 안에서 움직일 한국 택시, 멀리 나갈 때는 우버를 이용하니 안전하고 비용도 저렴하여 프리웨이 운전이나 스트릿 파킹을 못하는 로컬의 여왕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처음엔 몰라서 옵션을 잘못 눌러 합승을 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30 거리를 $5.98불에 가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관광지, 쇼핑몰, 바닷가, 한인타운, 음식점 것도 많고 맛집도 많았지만, 가장 인상 깊고 좋았던 곳은 5가와 Spring Street 있는 "The Last Bookstore"였다. 이 중고 서점은 미국 출판시장이 어려워져 대형 서점이 파산하던 시기에 확장공사를 하여 2층을 올렸고 세인의 생각과 반대로 승승장구하여 엘에이 다운타운의 명소가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시간 동안 어느 작가의 사인회가 예약되어 있다며 외부인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 인심 같으면 손님이 누구든 있도록 열어 주었을 텐데 야속하게도 안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하는 없이 리틀 도쿄를 구경하고 갔더니 열려있었다. 매장으로 들어서니 전날 들렀던 알라딘 중고서점보다 깊고 짙은 냄새가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오래된 종이책 냄새에 설렌다. 서점 전체를 아우르는 고풍스러움에!’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일층 한구석엔 사라져가는 중고 전축 판이 진열되어 있었다. 존뎀버를 비롯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판들이 빛바랜 자켓속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진열된 장식품들 역시 새것보다 재활용품이 많았다. 뚜껑이 떨어져 나간 카세트 플레이어, 고장 전축, 빈 통에 이르기까지 공간이 허락하는 곳이면 작은 선인장이 심겨 있었고 쓰레기통에나 있을 법한 물건들도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예술품으로 변해 있었다. 시공간을 뛰어 넘어 온듯 터널과 헌책을 이용해 만든 인테리어, 그 위를 비주는 노란 조명도 분위기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것들에서 뭔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곳엔 1불짜리 중고책이 십만 권도 넘는다고 들었다. 중고와 신간이 함께 있는 매장에는 책을 고르거나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는 고맙고 반가웠다. 딸이 책을 고르는 동안 책장 사이를 천천이 걸었다. 신간보다는 낡고 빛바랜 책에 눈길이 머물렀다. 책을 분류하느라 책장에 붙여놓은 레이블도 흘러 세월만큼 오래된 타자기 서체였다. 문득 많은 책을 대체 누가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문장 한 줄, 어휘 하나에 고뇌했을 이름 모를 작가들과 눈인사를 하고 먼지를 털어주며 그들을 마음을 쓰다듬었다.

 

 

얼마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유아인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소설가의 이야기여서 관심있게 보았다.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와 80 동안 타자기에 봉인되었다 현생으로 찾아온 유령작가 유진오, 한세주의 열혈 전설의 우정과 애국, 사랑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그들은 현생에서 다시 만나 암울했던 1930년대를 살아야했던 그들만의 이야기를 시카고 타자기라는 소설로 완성하게 되고, 해방된 조국에서 마음대로 글을 쓰며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에서 한세주가 외국의 서점에서 사인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책방에도 오래된 서적과 오래된 물건들이 있었다. 그곳에 진열되어 있던 언더우드 타자기에 봉인되었던 유진오의 이야기가 풀려 나왔던 것처럼, 라스트 스토어에 진열된 책과 물건들도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거나 손가락으로 클릭하면 봉인되었던 슬픈 이야기들이 술술 풀려 나올 것만 같았다. 오래된 책방을 걸으며 자문자답했다. 나는 누군지, 뭘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

 

일주일만에 만난 지인이 그랬다. 여행을 다녀온 뭔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 것처럼 느껴진다고. 그랬다. 책방에서의 시간 여행은 익명의 땅에서 중심을 잃고 정신없이 흔들리던 무명작가의 나침반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다시 것이다

 

  • 0
  • 0
(소설) 김영하의 흡혈귀 (by 박인애) (시) 나들이 (by 박인애)

댓글 달기 WYSIWYG 사용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정렬

검색

정렬

검색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