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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 Paterson

박인애2019.04.10 22:58조회 수 578댓글 0

패터슨.jpg

 

 

짐 자무쉬 감독,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주연

 

 이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이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다녀온 후 영감을 얻어 만든 영화다. 주인공 패더슨(아담 드라이버 분)은 패더슨에서 버스 운전을 하며 승객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고 틈틈이 시를 쓰는 사람이다. 월요일부터 시작하여 다음 월요일이 올 때까지 일주일간 그의 일상과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이 영화는 눈에 띄는 반전은 없지만 잔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한 부부의 소소한 행복과 소박한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패터슨은 뉴저지의 작은 도시 패터슨시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 동네에서 직장을 잡아 일하는 전형적인 미국사람이다. 미국에 이민와 사는 동양 사람들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서 대도시에 직장 잡는 걸 최고의 성공이라 믿지만, 미국에 오래 산 백인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서 공부하고 그 동네에서 직장에 다니는 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패터슨은 매우 규칙적인 사람이다. 6시 반 정도에 일어나 아내를 깨우지 않고 혼자 씨리어를 우유에 말아 먹고 도시락을 챙겨 직장인 버스 회사까지 동네 길을 걸어간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노트에 시를 몇 줄 적는다. 눈감고도 찾을 만큼 익숙한 거리를 승객들을 위해 일주일에 6일간 운전하는 게 그의 일이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나 그에겐 매일이 새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계절마다 다르고 버스를 타는 승객들의 이야기도 매일 새롭기 때문이다. 일상의 빈틈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라고나 할까.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동네 작은 술집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와 잠을 잔다.

 

 패터슨의 아내(골쉬프테 파라하니 분)는 손재주가 좋아서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있는 커튼에 그리기도 하고, 자기 옷에 그리기도 하고, 집안을 직접 페인트 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컵케익을 구워 공판장에 나고 잘 팔리면 컵케잌 가게를 차려보겠다는 꿈을 꾸기도 하고, 어떤 날은 형편에 맞지 않은 할레퀸 기타를 사서 연습을 하며 컨츄리 송 가수를 꿈꾸기도 한다.

그녀는 매사 긍정적이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시를 열심히 쓰라며 응원하기도 한다.

 

 패터슨은 늘 제목을 먼저 쓰고 시를 쓴다. 한 번에 다 쓰는 게 아니라 하루에 조금씩 문장을 완성해 간다. 그는 노트를 도시락통에 신주단지처럼 넣어가지고 다닌다. 아내는 모든 기기를 갖고 있지만, 그는 핸드폰이 없다. 필요를 느끼지 못해 사지 않는 것이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며 말수도 적다. 그렇지만 불의 앞에서는 용기있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부부 사이는 원만한 편이다. 아내가 하는 일이나 그녀가 만들어 주는 음식에 불만을 말하거나 토를 달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 역시 그렇다.

 

 토요일에 아내가 공판장에서 컵케익을 다 판 기념으로 영화와 외식을 제안하여 부부는 오랜 만에 데이트하고 돌아온다. 그 사이 강아지가 그의 시가 적힌 보물 노트를 다 물어뜯어 쓸 수 없게 만들었다. 부부가 입을 맞추는 꼴도 못 보고 짖어대고 패터슨이 출근하고 없으면 집 앞 우체통을 기울어지게 밀어 버리는 심통 사나운 녀석이었다.

 열심히 써 놓은 시를 모두 잃은 그는 너무나 허무했다. 아내가 매일 복사를 하라고 했는데 하지 못했다. 한 번이라도 읽어주었다면 기억에라도 남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도 화를 내거나 개를 때리진 않았다. 기껏해봐야 동네를 돌며 화를 푸는 방법밖에 모르는 착한 남자다. 컴퓨터에 저장했던 시를 하드가 타버리는 바람에 몽땅 잃은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 허망함을 이해한다. 잘 쓰고 못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적은 자식같은 시여서 그렇다. 한번 쓴 글을 다시 쓰는 건 가능치 않다. 그때 그 감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동네에 있는 계곡에 갔다가 오사카에서 관관차 방문한 일본 관광객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관광객은 패터슨 시에서 나고 자라 시인이 된 윌리암 칼로스 윌리엄스가 살던 동네를 와 보고 싶었다며 시인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도 시인이라고 말한다. 패터슨은 자기도 시 쓴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자기는 일본어로 시를 쓰는데 번역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번역한 시는 우비를 입고 샤워한 것 같다. 적절한 비유였다.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가 그렇다. 뭔가 어색하고 정확한 표현이 어렵다. 일본인은 노트 한 권을 그에게 선물하며 빈 노트가 많은 가능성을 주죠라고 한다. 패터슨의 마음에 물결이 일었을 것이다. 그는 볼펜을 꺼내어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한 영화가 지쳐서 미동조차 없던 생각의 호수에 물무늬를 만들었다. 슬럼프였다. 한 문장도 적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도 잠조차 편히 자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감이 떨어진 이유가 명확해졌다. 생각의 각도를 바꾸면 한 둘이 아니라 좀 더 많은 물수제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나가세 마사토시의 말처럼 빈 노트가 많은 가능성을 주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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