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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연한 만남, 운명적 인연

박인애2019.02.20 21:31조회 수 8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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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친이모도 있지만, 혈연 못지않게 끈끈한 정을 나누며 지내는 이모도 있다. 친정어머니가 음식과 관련된 사업을 하셨을 때 한솥밥 먹은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 같은 분들이다. 이모들이 우리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에겐 자연스레 이모가 되었다. 이모들이 많아지다 보니 헛갈려서 이모라는 호칭 앞에 성을 붙여 불렀다. 성이 같은 경우는 그 앞에 고향까지 붙여서 부르곤 하였다.

 이모들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소풍이나 대중목욕탕, 병원 등을 따라다녀 주었다. 많은 이모가 우리 곁을 스쳐 갔다. 어떤 이모는 시집을 간 후 연락이 끊겼고, 어떤 이모는 시골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물건과 돈을 훔쳐 달아난 이모도 있었다. 엄마는 돈을 벌겠다고 고향을 떠나 객지로 온 이모들을 피붙이처럼 여기며 돌봐주었다.

 장양이모는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온 가족이다.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부터 돌아가시고 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이모다. 이모는 나를 내 새끼라고 부른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같이 울어 준 사람도 이모였고, 친척들이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내게서 등을 돌렸을 때도 난 너의 선택을 믿는다며 내 손을 들어준 사람도 이모였다.

 이모는 내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어릴 땐 학년이 바뀔 때마다 신발이나 책가방을 사 주었다. 어른이 되어 미국에 이민 온 후에도 면으로 된 속옷이며 건어물, 고춧가루를 한해도 거르지 않고 보내준다. 나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고구마 순이 나오는 철이면 손톱 밑에 까만 물이 드는 줄도 모르고 껍질을 까서 말리고, 무말랭이, 호박, 가지 고춧잎도 제철일 때 말려서 한 번 먹을 만큼씩 포장해 보내준다. 딸아이 첫돌에는 세 식구 세트로 입으라고 한복을 맞춰 보내 주어서 잔치를 빛내주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어머니가 받아야 할 사랑을 내가 대신 받고 있으니 말이다. 한겨울에 통화하다가 기침 소리가 조금만 깊어도 도라지와 대추, 대파 뿌리를 씻어서 선풍기로 말려 다려 먹으라고 보내주니 그 사랑을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묵직한 소포를 받을 때마다 대체 내가 뭐라고 하는 생각에 고개가 숙어진다. 내가 부모라도 그처럼 하지는 못할 것이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경위 바르고 지혜로운 이모, 그 무엇보다도 정 많은 이모가 내 편이어서 차가운 세상을 버틸만했다.

 여섯 살짜리 계집애를 무척이나 예뻐하던 열여덟 살 시골 처녀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관절도 좋지 않고 아픈 곳이 늘어 가는데도 여전히 부지런하다. 내가 이모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영양제나 커피 같은 작은 것들뿐이어서 늘 미안한 마음이다. 언제쯤에나 미국으로 초대하여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내 손으로 지은 따뜻한 밥을 대접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나온 세월의 갈피에 이모가 있다. 이모에게서 친정엄마의 사랑이 느껴진다. 이모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이래저래 사랑의 빚만 늘어간다. 이모가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딸아이에게도 친 이모 아닌 이모가 많다. 내게 언니라 부르는 동생들에게 이모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나와는 달리 이모 앞에 이름을 붙여 부른다. 아무쪼록 딸이 소중한 인연과 더불어 정을 나누며 외롭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 피보다 끈끈한 게 사람의 정이고, 인연이 돈보다 귀한 재산이라는 라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인연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배려할 때 좋은 관계가 지속할 수 있다.

 겨울이 머지않았다. 날이 추워지고 있지만, 올해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모가 있어 따뜻한 겨울이 될 것 같다. 이모의 겨울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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