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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I have a dream

박인애2018.10.23 06:49조회 수 12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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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와서 한동안은 공휴일의 날짜가 왜 매년 바뀌는지를 몰랐다. 아니, 어쩌면 먹고 사는 문제가 급급해서 그런 데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앞을 보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그저 달력에 빨간 글씨가 있으면 오늘은 일하러 안 가도 되는 날인가 보다 여기며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휴일은 날짜가 고정된 데 반해 미국의 공휴일은 설날과 크리스마스 등 몇 개를 제외하면 거의 다 몇 월, 몇째 주, 무슨 요일이라고 정해져 있어 날짜가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미국 국경일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저 노는 날이 아니라 기념하고 동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 고향 떠나 산 세월이 짧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일월 셋째 주 월요일은 'Martin Luther King Jr. Day'였다. 그날을 기해 대부분 극장에서는 ‘SELMA’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1965,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흑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하던 중 경찰들의 과잉진압으로 많은 사람이 다치고 피를 흘렸던 사건을 조명한 영화였다. 아직도 공권력을 가진 자들의 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50년 전 사건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 것이 괜찮을지 염려가 되었다. 곪은 것을 짜내는 것은 옳은 일이고 불편한 역사적 진실이라 해도 후세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자칫 로스앤젤레스 폭동과 같은 사건으로 번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고개를 들었다. 당시 미국의 주요 미디어들이 흑백갈등을 교묘하게 한 흑 대결 구도로 몰아가면서 제삼자인 한인 가게들이 억울하게 방화와 약탈의 표적이 되어 버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 상처가 지워지지 않은 한인들은 흑백갈등이 생길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20148, 미주리주의 퍼거슨이라는 도시에서 백인 경찰이 십 대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에게 총격을 가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년은 경찰의 지시에 순응했고 비무장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과잉진압을 해서 빚어진 결과였다.

경찰 당국은 해당 경찰의 신원을 공개하지도 않고 공무 휴직으로 처리해 버렸고 이에 화가 난 흑인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가 확산되자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성의 있는 조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서장이 해당 경찰의 신원을 밝히면서 청년이 죽기 전에 담배를 훔치는 영상을 공개하여 수사 방향을 흐리려는 듯하자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흑인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퍼거슨 시에는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고 주 방위군이 투입되는 등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이즈음 미국 풋볼팀 ‘Saint Louis Rams’ 소속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두 손을 위로 올리는 동작을 취해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낸 일이 있었다. “Hands up, don’t shoot!” 손을 들었으니 쏘지 말라는 의미의 이 동작이 널리 퍼져 나가면서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작년에 상연된 영화 ‘Fruitvale Station,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역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죽은 흑인 남성의 실화를 다룬 것이다. 오스카는 신년맞이 불꽃놀이를 보러 나갔다가 어이없는 참변을 당했다. 드러난 잘못도 없고 비무장 상태였는데 왜 죽였는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오스카의 불행도 퍼거슨 시에서 일어났던 불행과 다를 게 없다.

퍼거슨 소요사태는 단순한 경찰의 과잉진압이냐 정당방위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실은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흑백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퍼거슨 시의 빈곤율은 200010.2%에서 201222%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퍼거슨 시의 흑인 인구는 201067%에 달했다. 그동안 흑인들은 심화한 경제적 불평등으로 먹고사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데도 시장이나 시 의원을 비롯한 고위층 공무원은 모두 소수 백인 차지였다. 비무장 흑인에게 가해한 백인 경찰들은 대부분 불기소되거나 기소되어도 무죄로 풀려났다. 여러 매체에서는 바로 이런 불평등이 퍼거슨 소요사태의 내재적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이후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차별과 억압이 종결되었는지 우리는 제대로 성찰해야 한다. 우리 역시 타 인종에 대해 편견이 있거나 무시하고 비하한 적은 없었는지 말이다. 노예제도는 미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노비제도가 있었다.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비친 노비의 삶은 극빈하고 비참했다. 면천을 받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평생 상전에게 귀속된 노비로 살면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식에게까지 종이라는 업을 물려주며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다.

 

 

 한국에 방문해보니 다문화 가정이 많아졌다.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선도 달라졌고, 국민의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노동착취나 임금체납, 폭력 등의 사례가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잘못된 악행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인종을 떠나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Melting Pot’이라는 표현이 실감 날 정도로 다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 땅,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하늘 아래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품어주고, 존중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빈부 격차가 해소돼 소외 강하여 온 유색 인종들의 경제난도 극복된다면 금상첨화일 테고 말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저의 네 아이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피부 색깔에 의하여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격에 의하여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Martin Luther King JrI have a dream 중에서-

 

 

 킹 목사가 간절히 원했던 꿈이 비단 피부색이 검은 자녀를 둔 그에게만 적용되는 말이었을까? 어쩌면 타국에서 사는 이민자의 자녀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인지 모른다. 남녀와 흑백이 평등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이 땅 어딘 가에서는 알게 모르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고,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행진도 이어지고 있다. 아무쪼록 퍼거슨 소요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고 더는 후폭풍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이 깊이 와 닿는 아침이다.

 

 나도 킹 목사가 소망했던 그런 세상이 오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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